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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0일..
며칠전 아내와 다투고 난 후에 냉전이 계속된다.
친구들과 조금 늦게 헤어진 것이 그렇게 못할 짓을 한 것인지..
정상이 아닌 남편이 걱정돼서 어린아이 물가에 내놓은 부모 마음으로 노했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9개월만에 친구들을 만나는 남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내가 원망스럽다.
아내에 대한 원망은 서서히 내 자신에 대한 비관으로 바뀐다.
왜 이런 더러운 병에 걸려서 하루아침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신세로 전락해 버렸는지..
길은 안보이고.. 답답하다.
여행을 떠나고 싶다.
혼자서..
여러가지 생각을 한다.
중국을 가볼까.. 제주도를 가볼까.. 지리산 종주를 떠날까.. 설악산을 갈까..
준비물이 가장 적은 설악산으로 떠나자.
아내에게 통보를 한다.
1박2일로 집을 떠나 머리 좀 식히고 싶다고..
아내가 가까운 곳에 가면 안되겠나고 물어 오지만.. 이미 마음의 결정을 한 상태다.
내 굳은 결의가 보였는 지 아내도 더 이상 말리지 못한다.
5월 31일..
용대자연휴양림에서 1박을 하며 많은 생각을 한다.
병을 얻고 나서 지난 10개월을 뒤돌아 본다.
처음에는 나와 관련된 인연을 끊어야 한다는 생각에 공황상태였다.
그러다가 한달간 무사히 투병생활을 하고.. 이후에 4차항암까지 무사히 마쳤다.
건강을 찾겠다고 가끔 산도 찾고.. 여행도 하였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그대로 있다.
매일 먹어야 하는 약봉다리가 내가 환자임을 다시 일깨워 준다.
2년간의 유지요법이 시작되고..
죽음에 대한 공포는 많이 사라졌다.
잠을 잔다고 생각하면 세상에서 하직하는 것이 공포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생각인가.
나를 믿고 지금까지 함께 살아온 아내 생각은 왜 못하는가.
그동안 속 끓였을 아내를 생각하니 울음이 북받친다.
남편이 병을 얻고 나서 그 충격이 얼마나 컷을까.
그 충격을 추스릴 시간도 없이 지금까지 병 간호하랴.. 음식 신경쓰랴.. 남편 투정 받아주랴..
속이 시커멓게 탔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또 다시 머리 좀 식히겠다며 혼자만의 여행을 고집했으니..
자꾸 눈물이 난다.
내일에 대한 희망을 담보하지 못하는 내 모습에 화가 난다.
딸도 눈앞에 아른거리고..
아내에게서 문자가 왔다.
잘 도착했느냐고.. 자기는 신랑바라기가 되어간다고..
세상에 이렇게 착한 마누라에게 나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죽음은 두려운 것이다.
그 사람들이 있는 한..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몸은 환자이지만.. 마음은 환자이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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