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장난

드디어 퇴원 - 2011.09.04-09.10 본문

투병생활/2011

드디어 퇴원 - 2011.09.04-09.10

삼포친구 2011. 8. 14.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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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4일..

이곳에서는 잠을 자도 깊은 잠을 잘 수 없다.

간호사들 밤새도록 왔다갔다하는 소리며..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들의 신음소리며..
항암제를 투여하고 부작용이 나타나는 시기는 환자들의 신음소리도 커져간다.
그러다가 서서히 회복기가 되고.. 혈액수치가 좋아지면 신음소리는 줄어간다.

한달여를 외부와 단절된 밀폐된 공간에서 지나다 보니.. 생각이 단순해지고.. 옆의 환자들의 고통에 무감각해진다.
어서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기에.. 다른 이들의 고통을 애써 모른 체 한다.

혈액수치가 좋아지고 입맛도 서서히 살아나는 느낌이다.
오늘은 반가운 소식이 날라왔다.
오전에 간호사가 와서 하는 말이 혈액수치가 거의 정상상태로 호전되어서 오늘은 촉진제 주사를 맞지 않아도 된단다.
촉진제를 맞은 지 13일만에 일이다.

혈액수치는..
- 적혈구 : 8.9 g/dl (정상치 10)
- 백혈구 : 6460 개/mm3 (정상치 4000-10000)
- 중성구 : 4850 개/mm3 (정상치 2400-6000)
- 혈소판 : 65000 개/mm3 (정상치 150000-450000)

어제 수혈을 안했는데도 혈소판수치까지 오른 것을 보면 혈소판도 정상적으로 생성되는 것 같다.

혈액검사를 위해서 혈관주사를 맞을 때는 짜증도 나고 했지만.. 혈액수치가 정상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촉진제는 즐겁게 맞았다.
이제 그 촉진제를 맞지 않아도 된다니 정상인으로 돌아온 느낌이다.

이곳 병실에는 희망도 있고.. 절망도 있고.. 치열한 싸움도 있다.
수원에서 온 50대 아저씨는 골수이식까지 성공하고.. 후유증치료까지 무사히 마치고 퇴원을 했으며..
부산에서 온 30대초 총각은 1차 항암치료를 무사히 마치고.. 골수이식을 위한 공여자를 찾아야 하는 숙제를 남기고 갔으며..
수능을 치러야하는 학생은 골수이식까지 마쳤으나.. 재발해서 다시 1차항암 치료를 이어가고 있다.
어린마음에 얼마나 상처가 컷을 지는 짐작할 수도 없다.
그리고.. 옆자리의 60대 아저씨는 연령때문인지 유난히 후유증에 시달린다.

오후 6시경에 어머님으로부터 전화가 있었다.
한두달에 한번씩은 시골에 내려왔는데..
몇달째 내려오지도 않고.. 아버지 제사에도 안내려오고.. 추석때도 바빠서 못내려간다고 하니..
많이 궁금하신 모양이다.
차마 전화를 받을 수 없어.. 받지 못하고.. 마음만 조린다.
어쩌다 이런 몹쓸병에 걸려서.. 이런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가?
어머님 생각에 눈물이 흐른다.
자식이야 내려가서 이런 모습이라도 보여드리고.. 잘 싸울테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위로라도 해드리고 싶은데..
어머님도 자식이 그리우시겠지만..
불효자도 어머님이 많이 그립다.

아내는 6개월이후에나 찾아뵙자고 하고..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길다.
항암치료 과정에서 불행하게 어머님을 못 볼 일이 생길 수도 있고..
어머님을 뵙는 것은 어머님이 받을 충격도 고려하고.. 일단 퇴원해서 결정하기로 했다.

오늘은 하루가 무척 길게 느껴진다.

9월 5일..

아침 7시경에 서울S병원 20층에서 내다 본 서울하늘이 매우 청명하다.
아침햇쌀이 시원하고.. 군데 군데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는 것이 영락없는 가을하늘이다.

서울을 둘러싼 많은 산들도 시야에 들어온다.
한달전까지만 해도 저 산들을 맘껏 누비고 다녔는데.. 언제 다시 힘차게 오를 수 있을지..

상태가 많이 좋아졌나보다.
오늘은 식사를 어느정도 하니 영양제(포도당 11% 885 ml, 아미노산 11.3%+전해질 300 ml, 정제대두유 20% 225 ml)까지 중단하겠다는데..
이미 투여하기로 한 것 하나만을 더 맞고 중단하기로 했다.
영양제까지 중단하고 나면 이제 주사대에 달려있는 것은 포도당뿐.. 항생제와 진균제는 계속 투여된다.

오늘쯤은 좋은 소식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오전에 주치의가 회진을 돌지 않아 궁금했었다.
지난주에 이번주초에 퇴원 예정이라고 했으니.. 지금쯤이면 얘기가 있어야 되는데..
초조하게 기다리는데.. 오늘은 점심식사 시간이 다되어서야 주치의가 회진을 돈다.
그리고.. 드디어 내일로 퇴원일이 정해졌다.
8월 2일날 서울S병원에 입원을 해서 9월 6일 퇴원이면 35일 만이다.

세상과 격리된 밀폐된 답답한 공간을 벗어난 것 만으로도 항암치료는 모두 끝난 느낌이다.
얼마만에 맛보는 행복감인가?
오늘밤에는 잠이 잘 오지 않을 것 같다.

오후 9시.. 내일 오전이면 퇴원인데.. 오후에 혈장, 항진균제, 항생제, 이뇨제까지 줄줄이 투여된다.
혈장을 수혈받는 중에 잠깐 출혈이 있어 긴장했으나 이내 멈춘다.
이거 정말 퇴원해도 되는 건가?

이제 밖에 나가서 무엇을 해야 하나?
우선은 몸조리부터 잘하고.. 차츰 체력도 키우고.. 차분하게 치료해야겠다.

9월 6일..

오늘은 구름한점 없이.. 아침의 서울하늘이 너무 쾌청하다.
마치 1차항암 치료를 무사히 마치고 퇴원하는 나를 축하라도 해주는 모양이다.

잠을 설치고.. 6시부터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빨리 벗어나고 싶다.

오늘은 BMT센타장이 회진을 돌았는데.. 추석 잘 보내라고 인사말까지 건넨다.
잘 치료해줘서 감사하다고 하니.. 아직 끝난것이 아니니 집에 가서 스트레스도 풀고.. 쉬었다가.. 2차항암 치료 준비를 하란다.
갈길은 멀고.. 마음은 조급하고..

퇴원을 한시간 앞둔 시간에도 포도당, 영양제, 항생제는 여전히 주사걸이대에 매달려 있다.

퇴원시간은 다가오고.. 일부러 병원밥은 거부하고..
간호사가 챙겨주는 약봉다리를 대충 주섬주섬 받아들고.. 병실에 남아있는 환자들의 쾌유를 빌어주며.. 퇴원한다.
이 얼마만에 땅을 밟아보는 것인가?
아내가 운전하는 차의 옆자리에 앉아서 편한 마음으로 집으로 향한다.

"아니 이동네가 언제 이렇게 바뀌었지?" 아내에게 농담을 건네며 퇴원을 즐긴다.
집에 오니.. 너무 좋다.
갑자기 밝은 햇살을 보아서 인지.. 조금은 어지러운데..
이렇게 내집이 좋은 걸..
한달이 10년처럼 느껴진다.

아내는 그동안 집안에 쌓여있던 쓰지않는 물건들을 모두 버려서 집안이 깨끗이 치워놓았다.
진작에 좀 깨끗하게 하고 살지..

저녁밥도 맛있고.. 오랫만에 늦게까지 공부하고 돌아오는 딸을 보니 너무 반갑고..
앞으로 이 작은 행복을 오래도록 지키리라.

9월 7일..

6시가 조금 넘어서 일어난다.
집에서 맞는 아침햇살도 반갑다.

아침에 일어나.. 회사도 가지않고 있으려니.. 시간이 남는다.
오랜만에 시간의 여유를 즐긴다.

오후에는 아내와 아파트 뒷산을 중간쯤 오른다.
짧게 오르는 길도 예전처럼 쉽지가 않다.
한달동안 운동을 전혀 못했으니.. 그동안의 다리 근육이 모두 빠져버린 느낌이다.
조금 올라도 다리에 힘이 없어 아내와 거리가 벌어진다.
땀은 나고.. 숨도 차고.. 어지러움도 있고.. 빨리 체력을 회복해야 겠다.

9월 8일..

퇴원할 때 처방받은 약을 적어보고.. 효능을 인터넷검색으로 알아본다.

아침식전

- 란스톤 30mg 1정 (항역류제, 항궤양제)

아침식후
- 푸루나졸캡슐 50mg 2정 (항진균제)
- 무코스타정 100mg 1정 (항역류제, 항궤양제)
- 베사노이드연질 10mg 4정 (급성전골수성백혈병 관해유도제)
- 슈프락스캅셀 100mg 1정 (항균제)
- 오리디핀정 5mg 1정 (혈압약)

점심식후
- 무코스타정 100mg 1정 (항역류제, 항궤양제)

저녁식후
- 무코스타정 100mg 1정 (항역류제, 항궤양제)
- 베사노이드연질 10mg 4정
- 슈프락스캅셀 100mg 1정
- 포리부틴정 100mg 1정 (위장관조절제, 항팽만제, 항염증제)
- 오리디핀정 5mg 1정

대부분이 베사노이드 복용에 따른 부작용이나 후유증으로부터 다른 장기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들로 보인다.

그리고.. 관해유도물질인 베사노이드에 대해서 검색했더니.. 아래와 같은 기사가 있다.

1995년에 미국 FDA 승인을 받아 현재까지 급성전골수성백혈병의 치료에 사용되는 약..
1995년 이전에는 급성전골수성백혈병 환자들도 대부분 골수이식을 했는데..
베사노이드를 이용한 이후에는 골수이식없이 치료할 수 있다는 내용..

<의학> 美FDA 새 백혈병(白血病)치료제 승인
연합뉴스 | 입력 1995.11.28 11:02

(워싱턴 AP=연합(聯合)) 미국식품의약국(FDA)은 27일 호프만-라로슈제약회사가 개발한 베사노이드(Vesanoid)를 백혈병중에서도 가장 치명적인 前骨髓球性백혈병 치료제로 승인했다.
FDA는 표준치료를 받은후 재발된 전골수구성백혈병환자 1천5백명을 대상으로 베사노이드를 투여한 결과 50%가 증세로 부터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밝혔다.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癌센터의 레이 워럴 박사는 또다른 임상실험 결과 베사노이드를 투여받은 환자는 진단후 5년생존률이 표준치료를 받은 환자의 25%에 비해 거의 3배나 높은 65%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베사노이드가 공식승인을 받음으로써 전골수구성백혈병환자들의 골수이식수술이 상당히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베사노이드는 백혈병세포의 노화(老化)를 촉진시켜 빨리 소멸하게 함으로써 정상세포의 재생을 유도하는 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골수구성백혈병은 흔치는 않지만 공격성이 매우 강한 형태의 백혈병으로 갑작스럽게 심한 내출혈을 일으키면서 환자의 생명을 위협한다.
이에 대한 현재의 표준치료법은 항암제(抗癌劑)인 안드라사이클린을 쓰는 것인데 약75% 는 효과가 없으며 마지막 희망은 위험이 수반되는 골수이식뿐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