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장난

본격적인 항암치료 - 2011.08.14-08.20 본문

투병생활/2011

본격적인 항암치료 - 2011.08.14-08.20

삼포친구 2011. 8. 14.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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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4일..

항암제투여 3일째..

심장보호제 100mg 정도 투여되고
이어 자베도스주의 항암제가 투여된다.

점심 식전에..
- 나제아정 0.1mg 추가 복용 (오심, 구토 억제제)

점심 식후에..
- 바클로펜 10mg 복용 (골격근이완제)

저녁 식후에..
- 베사노이드연질 10mg 4정
- 무코스타정 100mg 1정
- 가스모틴정 5mg 1정

- 자이로릭 100mg 1정
- 바클로펜 10mg 1정

그리고.. 마지막에..
폐에 물이 차는 것 같다며
이뇨제 한방..

저녁때는 골격근이완제를 맞은 탓인지..
대장이 제 역할을 못하여 대변 보는 일에 실패한다.
대변은 안나오지만 가스는 계속 나오고..
어쩔 수 있나 실례를 무릅쓰고라도 실내에서 악취를 풍기는 수 밖에..

8월 15일..

8월 15일 광복절을 무균실에서 맞는다.
바깥세상은 일본과의 독도영유권에 대한 다툼으로 난리다.

저것들은 잊을 만하면 한번씩 저렇게 우리민족을 화나게 만든다.

서울S병원에 입원한 지 2주째가 되어 간다.

병원생활에 쉽게 적응함에 내 자신이 더 놀란다.
2일간의 눈물로 마음이 진정되고.. 하루빨리 건강하게 병원밖으로 나가고자 하는 생각 뿐이다.

내가 아픈 사실은 친구들과 형제들 밖에 모른다.

어머님은
아직도.. 여름휴가철에 내려오지 않는 자식을 기다리고 계신다.

아침에도 통화를 했다.
행여나 눈치를 챈 것인지..
지난 주에 벌초를 한 이야기하며..
조카 손주의 돌잔치 이야기하며..

아들이 바쁘겠거니 하시며 애써 기다림을 숨기시는 눈치시다.

8월 16일..

항암제투여 4일째다.

동일한 백혈병 병실에 있는데..

병명이 모두 제각각이다.
치료단계도 제각각이다.

결국은 끌어안은 상처의 크기도 제각각이다.

백혈병은 급성/만성으로 다시 림프구성/골수성으로 구분되고..
치료과정은 항암치료/골수이식으로 구분된다.

항암치료 단계면 유지요법이나 골수이식을 남겨놓은 상태이고..
골수이식 단계면 이미 항암치료 단계를 경험한 사람들이다.

어떤 젊은 친구는 골수이식까지 받고 재발해서 다시 들어온 친구도 있고..
어떤 아저씨는 군대갈 아들의 골수를 이식받고 치료중인 분도 있다.
또 다른 친구는 나와 비슷해서 이제 막 항암치료를 끝내고 2차전을 준비하는 친구도 있다.

어떤 아저씨는 아직도 정확한 진단이 나오지 않아 정확한 진단을 위한 골수검사를 받아야 하는 아저씨도 있다.
신경은 엄청 예민해진 상태고..

항암치료 단계인 사람들이 갈길이 멀어서 힘들고.. 골수이식 단계인 사람들은 남겨진 과정이 힘들거나 결과가 안좋아서 힘들다.

짧은 이야기에도 쉽게 눈물이 난다.
당장 무슨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희망이 적어진다는 것이 나자신을 슬프게 만든다.

8월 17일..

오늘도 창밖에는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다.

올 여름은 유난히도 비가 많이 내리는 여름이다.
서울S병원에 입원한 이후로 서울의 하늘이 맑게 개인 것을 본적이 없다.
계속 흐려있거나.. 갑자기 검은구름이 몰려와 비바람이 몰아치거나..
나야 어차피 병때문에 여행도 못가고 휴가도 못갔다지만..
올 여름을 기대했던 많은 사람들의 실망은 얼마나 컷을까..

병원에 입원하고 나서 하루하루 날짜가 지나가는 것에 무감각해진다.
오히려 밖에 있을 때 보다도 날짜가 더 빨리가는 듯한 느낌에 놀라곤 한다.

짐을 내려놓음에 익숙해 지는 것인지.. 느리게 사는 것에 익숙해 지는 것인지..
앞으로 무엇인가 해야 할 다급한 일이 없어짐에 익숙해 지는 것인지..

오후가 지나면서..
항암제의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인지.. 가끔씩 졸음이 오기도 하고.. 정신이 멍해지기도 한다.
이제부터 버텨야 한다.

8월 18일..

눈을 떴다.

새벽인것 같은데.. 장소는 서해안 어느 외딴 작은 항구인 것 같다.
몇명 안되는 사람들이 배에 타고 어디론가 막 출발을 하려 하고 있다.

나도 부지런히 출발을 한다.
아내는 자기가 무슨 기관사라도 된 양 갑판위에 올라 먼 앞을 바라보고 있고..
그 뒤에서 아직도 어린 딸을 업고 갑판위로 힘겹게 따라 오르는 이가 있으니 내 모습이다.

어디론가 배는 출발한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뜬다.

뱃소리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나는 병실의 침대에 누워있고.. 병실 환기계통의 작동소리가 시끄럽다.
시끄러운 배는 계속해서 어디론가 가고 있다.

내가 밖으로 향해 잡고 있는 끈을 놓기도 전에..
밖에서 나를 향해 잡고 있는 끈을 먼저 놓아버리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다.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아내의 용기도 한순간 작아지는 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8월 19일..

아침부터 기분이 착 가라앉았다.
옆에 있는 환자와 보호자들도 신경쓰이고..
이것도 항암의 부작용인가.. 신경이 조금씩 날카로워 진다.

새벽에는 계속해서 설사가 나고.. 배도 조금씩 아파오면서.. 잠을 설쳤다.
장염인 것 같지는 않은데.. 주치의에게 말씀드렸더니 급기야 오후부터는 금식 처방을 내린다.

먹고 괴롭느니 차라리 안먹고 덜 괴로운게 낫겠다는 생각이다.
어차피 입맛이야 별로 느끼지도 못하고.. 살기위해 먹는다는 생각이었으나..
병원이란 곳이 기계처럼 생명줄만 꽂고 앉아 있으면 먹지 않고도 몸에 필요한 모든 것이 공급되는 곳이니..
이처럼 편리할 곳도 없다.

오후가 되면서 기분이 조금 좋아진다.
마음의 휴식을 취하라고 걱정하던 마눌이 생각나서 일부러 따라해 본다.
서울S병원은 전국의 백혈병환자들이 모두 몰려드는 곳이다.
유명하다보니.. 지방의 큰 병원조차 마다하고 이곳으로 몰려든다.
병실에 빈자리가 나면 곧바로 다음 환자가 들어온다.

땅을 밟아본 지가 20일이 다 되어간다.
땅을 밟는 행복이 이렇게 큰 것인 줄 몰랐다.
예전에 사소하게 느꼈던 모든 것들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