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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생활/2011

Post 12일차.. - 2011.08.28-09.03

by 삼포친구 2011.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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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8일..

Post 12일차(마지막 항암제투여 후의 날짜를 칭함)이며 촉진제를 맞은 지는 7일차가 되어가는 날이다.
오늘은 혈액수치에서 긍정적인 신호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의사들이야 숱한 경험에서 언제쯤이 되어야 혈액에 제대로 생성되는 지 알 수 있겠지만..
환자들이야 처음 경험하는 일이니.. 조바심도 나고 불안하기도 하고..
묻기만 하면 1-2주 두고 보자고 하니.. 한번 물어보면 벌칙으로 퇴원가능일을 미루는 것 같아 묻기조차도 두렵다.

01시 40분경..
어제 오후 늦게까지의 수혈때문인지.. 다시 혈압이 조금 오르고 뒷골이 욱신거린다.
간호사를 부르려다 그냥 참기로 한다.
한시간 정도를 시달린것 같은데.. 어느새 잠이 들고..

05시 30분경..
혈압이 정상상태(130)로 돌아왔다. 두통도 사라지고 새벽 몸상태는 괜찮다.
위험한 발상이지만 자력으로 잠깐의 고혈압을 이겨냈다는 승리감도 느낀다.

아침에 샤워를 하니 내가 정말 백혈병환자인가 싶을 정도로 몸이 개운하다.

이곳에 와서 내몸을 각종 균들로부터 보호하고 청결하게 유지하는 법에 대해 많이 배운다.
- 1일 4회 양치 및 가글하기
- 외부출입시 손소독하기
- 3일에 한번 샤워하기
- 1회용 물품 재활용 않기 (건강한 사람들이야 상관없겠지만..)
- 4시간이 지난 개봉한 음료나 과자 등은 모두 버리기
- 주변환경 청결하게 유지하기 등..

모두가 퇴원해서 지켜야 할 일이다.

12시 30분..
- 아이비글로브린에스주 (면역제) 주사

13시 30분..
- 혈액수치 (중성구와 백혈구가 바닥이다. 퇴원일이 요원하다.)



15시 30분.. 혈압이 140대에서 내려오지 않아 혈압약 복용
- 오르디핀정 5mg 1정

16시..
- 혈액촉진제.. (언제나 본격적인 효과가 나타날지.. 아직 뼈의 통증 등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는다.)

저녁부터 금식이 해제됐다. 이제는 설사가 좀 멈춰 주었으면 좋겠다.
오늘은 아직까지 별 다른 일없이 잘 지나가고 있다.
내가 이렇게라도 사소한 일을 기록하는 이유는.. 혹시나 발생할 수도 있는 의료사고에 대비하고자 함도 있지만..
무엇인가 하지 않고는 미쳐버릴 것 같은 격리감과 두려움을 떨쳐버리기 위함이다.

8월 29일..

01시 10분..
어제오후에 먹은 혈압약 덕분인가 혈압이 정상(110)을 유지한다.

간호사가 덧붙이기를 금일부터는 아침저녁으로 혈압약을 복용할 것이란다.
혈압약은 그동안 내가 먹어왔던 트리아핀정 대신에 오르디핀정으로 바뀌었는데.. 백색의 타원형 작은 알갱이다.
효과가 빨리 나타나는 것을 보면 조금 더 진한 약인 것 같다.

벌써 8월 5째주 월요일이다.
병실밖의 시계는 8월마지막주이고 월요일이니 바쁘게 돌아갈 것이다.
8월 이후로 병실안의 내시계도 나름대로 바쁘게 돌아간다.
검사받고.. 항암치료하고.. 부작용치료하고.. 수혈하고.. 약먹고.. 주사맞고..
이곳에서의 하루도 결코 느리게 가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 베게시트를 보니.. 밤새도록 빠진 짧은 머리털이 새까맣게 달라붙어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탈모가 되는 모양이다.
하긴.. 탈모가 잘 된다는 것이 항암제가 효과를 나타낸다는 의미일테니..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오전 10시경에 주치의 회진이 있었는데.. 회복이 잘되면 금주말이나 다음주초에 퇴원이 가능하단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 잘 되어가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소리도 함께..

오후에는 2일전인가.. 수혈 때문에 혈관주사를 맞은 곳이 열이나고 부어올라 얼음찜질을 두팩이나 했다.
조금 시원하니까 통증이 가라앉는 것 같기도 하고..

혈액수치는 오늘까지도 좀처럼 오르지 않는다.
백혈구가 약간 오르는 것 같지만 수치가 미미하여 확신할 수는 없다.
내몸이 제기능을 유지할 때까지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한 모양이다.
기다려야지.. 아직 완전히 탈모가 되지 않았다는 얘기는 항암제가 더 작용을 해야 된다는 의미일테니..

오늘은 투여된 항생제나 주사제에 대해 기록해 볼까 한다.
목적도 다양하고 포도당병에 희석해 맞으니 정확한 이름을 알기도 어렵다.

09시 30분 항생제 (혼합물)
- DNS1-A 100ml 1BT
- DWMRP500J 1000mg 2V
09시 30분 지혈제
12시 20분 면역제
- 아이비글로브린에스주 5000ml 100ml
14시 00분 항진균제 (혼합물, 푸르조나주(푸른색))
- D5DW2-A 200ml 1BT
- DH-HC100J 500mg 0.5V
- DW-AB50J 50mg 1V
16시 00분 - 촉진제
17시 10분 - 혈소판(1) (계속 혈액수치가 오르지 않는 모양이다.)
21시 20분 항생제 (혼합물)
- DNS1-A 100ml 1BT
- DWMRP500J 1000mg 2V

참 주사제도 가지가지다.

8월 30일..

이곳 무균실에서의 하루는..
대개 오후 10시경이나 다음날 새벽 01시경에 끝이나고.. 새벽 5시 30분 경에 시작을 한다.

항상 매달려있는 영양제(카비벤페리 1500)와 포도당(5%DWNaK2) 주사를 제외하고..
그날 맞아야 하는 주사약이 적으면 10시경에 건강체크 만을 마치고 끝나는 편이고..
주사약이 많은 경우는 새벽 01시까지 주사를 맞은 후에 끝이난다.

그리고.. 취침을 하고.. 아침 조회를 하듯이 05시 30분경에 간호사가 들어와서 전날밤의 무사안일과 건강체크를 한다.
건강체크라야 간단한 체온, 혈압, 몸무게, 신체대사량 (섭취량/배설량) 등을 조사하는 것이지만 환자에겐 매우 중요한 것이다.
하루에도 체온과 혈압이 몇번씩이나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이 이곳 환자들의 모습이다.

이곳에 있으면 무슨 교도소나.. 지옥같은 생각이 난다.
다른 점이라면 잡혀오는 사람들이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바깥세상에서 무작위로 선별해서 잡아온다.
연령대도 다양하고.. 취미/직업도 다양하고.. 병명도 다양하고..
일주일이 지나면 한사람 퇴원하고.. 또 다른 사람이 잡혀오고.. 겉보기에 너무도 건강한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 들어와도 2-3일이 지나면 항암제의 부작용을 피해가지 못하고 딸꾹질에, 고열에, 탈모에, 다른 신체장기의 부작용에 시달린다.

암은 정말 무서운 병이다.
암자체로도 무서운 병이지만..
암투병을 위한 과정이 너무도 길고 험해서 그 과정을 모두 무사히 견디어야 한다는 사실도 무섭다.

아침에 변을 보니 다행이도 조금은 설사기가 있지만 색깔도 그렇고 정상적인 변이다.
보통의 설사는 먹자마자 배설을 하는데.. 나는 하루 이틀 지나서 배설을 하니.. 형체만 설사지 설사가 아닐 수도 있다.
그동안 설사와 변색깔이 이상해서 걱정이었는데 다행이다.
소변색깔과 양.. 대변색깔과 양에 일희일비 해야하는 것이 이곳의 생활이다.

그나마 오늘은 오전도 편안하고.. 오후도 무난히 넘어가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작은 내 몸속의 평화가 모두 끊임없이 주입되는 각종 항생제와, 면역제, 진균제의 영향임을 안다.

2일전인가? 오른쪽에 수혈을 위해 혈관주사를 놓았는데 그 부위가 벌겋게되며 열이 가라앉지 않는다.
간호사에게 부탁해서 얼음찜질을 한다.

8월 31일..

내 인생 최대의 잔인한 8월이 이렇게 지나간다.

7월 31일 분당C병원에서 급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은 지 32일째 되는 날이다.
그리고.. 이곳 서울S병원으로 옮긴지도 30일째 되어가는 날이다.

오늘도 하루는..
항암치료후 항상 맞아 온 포도당, 영양제, 항생재와 기타 10여알의 약 복용으로 시작한다.

항암초기에는 암세포를 죽이기 위한 항암제투여가 주요 치료목적이었다면..
지금은 항암제투여로 발생하는 여러가지 부작용을 막고..
혈액수치의 감소에 따른 출혈예방, 감염예방, 그리고 각종 장기에 대한 부작용을 막는 치료로 집중된다.

항암제의 부작용으로 손바닥 발바닥은 한꺼풀 모두 벗었고.. 입술은 몇꺼풀은 벗었다.
탈모는 거의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다.
이삿짐용 테이프를 머리에 붙였다 떼면 머리카락이 새까맣게 달라붙는다.
몸무게가 줄어야 된다는데.. 체중은 오히려 늘고.. 체중이 조금만 늘면 간호사들은 바로 이뇨제를 투여한다.

늦게 나온 혈액검사 결과에 혹시나 수치가 좋아졌을까.. 기대를 했는데.. 아직은 시간이 필요하다.
오전에 주치의도 빠르게 오르는 것보다 천천히 오르는 게 더 좋을 수도 있다고 했다.
오늘도 혈장 2개와 혈소판 1개의 수혈이 예정되어 있다.
내가 수혈받은 혈액만 해도.. 백혈구만 제외하고.. 적혈구, 혈소판, 혈장을 모두 합쳐 수십팩은 될 것이다.
드라큐라도 아니고.. 이렇게 혈액이 고파서야..

주사액에도 투여하는 규칙과 순서가 있다.
수혈은 일반 주사액과 다른 배관을 사용해야 하는데.. 중심정맥관 하나로 모든 주사액을 투여하다보니..
수혈을 할 때는 따른 주사액이 못 들어가고..
항생제나 진균제를 투여할 때는 영양제나 포도당이 못 들어간다.

항상 늦은 시간에 수혈을 하다보니.. 오늘은 새벽 12시를 넘겨서야 항생제를 마지막으로 일정이 모두 끝난다.
간호사는 시간맞춰 주사놓느라 지치고.. 환자는 중간중간 주사맞고.. 체온재고.. 혈압재는 일에 지친다.

저녁때 아내에게서 문자가 왔다.

"저녁 먹었나요? 백혈구 수치는 좀 올라갔나?"

이에 대한 답신문자..

"저녁은 미역국에 밥 반그릇, 수혈은 혈장하나 맞았구.. 앞으로 혈장 하나 더.. 혈소판 하나 더.. 드라큐라다."

9월 1일..

9월 첫째날.. 병원에서의 하루가 또 이렇게 밝는다.
어제의 무탈함에 감사하며..

이곳 환자들의 상태는 수시로 바뀐다.
갑자기 악화되기도 하고.. 갑자기 호전되기도 하고..
센타장 말에 따르면..
모든 외적으로부터 자국군으로 지켜야 하는데.. 용병들을 쓰다보니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대한 용병을 지원하는 것이 자기들의 역할이며.. 나머지는 환자와 신의 몫이란다.

인간이 조금 위에서 길가는 개미를 가지고 장난치듯이..
신들이 인간들을 가지고 장난치다가 맘에 안드는 놈 수렁에 빠뜨리면 병에 걸리는 것이고..
다행이 수렁에서 허우적거리다 빠져 나오면 살겠지만.. 빠져 나오지 못하면??

운명이다.

오후에 혈장을 수혈하고 나서 속이 메스껍다.
저녁을 한술도 뜨지 못하고.. 그냥 반납했다.
혈액수치는 8월 30일을 기점으로 아주 조금씩 오르고 있다.

투여된 항생제나 주사제가 워낙 많으니 모두 다 기록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오늘도 열심히 기록해 볼까 한다.

05시 10분 지혈제

05시 30분 항생제 (혼합물)
- DNS1-A 100ml 1BT
- DWMRP500J 1000mg 2V

05시 30분 체온, 혈압, 맥박, 몸무게, 섭취/배설량 검사

07시 30분 (아침식전)
- 란스톤 30mg 1정

08시 15분 (아침식후)
- 티로파정 100mg 1정
- 포리부틴정 100mg 1정
- 무코스타정 100mg 1정
- 후라시닐정 250mg 2정
- 베사노이드연질 10mg 4정
- 오리디핀정 5mg 11정 (혈압약)

08시 30분 항생제 (혼합물)
- DNS1-A 100ml 1BT
- DWMRP500J 1000mg 2V

09시 15분 비타민 K (노란색)

11시 40분 체온, 혈압, 맥박, 몸무게, 섭취/배설량 검사

11시 50분 항진균제 (혼합물, 푸르조나주(연록색))
- D5DW2-A 200ml 1BT
- DH-HC100J 50mg 0.5V
- DW-AB50J 50mg 1V

13시 15분 (점심식후)
- 포리부틴정 100mg 1정
- 무코스타정 100mg 1정
- 후라시닐정 250mg 2정
- 티로파정 100mg 1정

13시 20분 이뇨제

16시 30분 혈장 1개

16시 30분 촉진제

17시 00분 항생제 (혼합물)
- DNS1-A 100ml 1BT
- DWMRP500J 1000mg 2V

18시 30분(저녁식후)
- 베사노이드연질 10mg 4정
- 후라시닐정 250mg 2정
- 무코스타정 100mg 1정
- 포리부틴정 100mg 1정
- 티로파정 100mg 1정
- 오리디핀정 5mg 1정

21시 10분 지혈제

21시 45분 혈장 1개

9월 2일..

한주가 시작되나 싶으면 어느새 주말이다.

그나마 요즘은 2011년 세계대구육상선수권 경기를 보느라 병원에서의 생활도 덜 지루하다.

촉진제가 투여된 지 벌써 11일째이다.
촉진제 효과가 나타나고 혈액수치가 오르기 시작하면..
조혈모세포의 자극으로 인해서 뼈에 통증이 올수도 있다는데..
어느정도의 통증이 나를 괴롭힐지 걱정이다.

아내는 오늘 본인도 속이 쓰리다며 건강검진을 받아봐야 겠다며 위내시경검사를 받으러 갔다.
최근에 무리한 것이 아닌가 싶은데.. 별일 없으면 좋겠다.
아내에게서 반가운 연락이 왔다.
위에 가벼운 염증이 있단다.

나 또한 혈액수치가 오르기 시작했다.
오전에 주치의는 다음주 초에 퇴원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게 얼마만에 듣던 중 반가운 소린지..

오늘은 아내 대신에 누나가 면회를 다녀갔다.
건강할 때는 몰랐는데.. 아프고 보니 동생 생각하는 마음이 끔찍하다.
혹시 면회하면서 울음을 보여 내 마음 약하게 할까 걱정했는데.. 내가 건강해 보였는지.. 기분좋게 돌아갔다.

9월 3일..

9월 첫번째 주말이다.

바깥세상은 8월 내내 비가 와서 여름피서를 망치더니..
8월 말부터 폭염이 시작되어 농작물의 결실에는 아주 좋다고 한다.

몸이 회복되면서 컨디션도 좋아지는 것 같고.. 이제 퇴원하면 무엇부터 해야하나 설레기도 하고.. 걱정도 되고..
인생길의 수정도 필요할 것 같고..
처음엔 충격이었지만.. 이제 차분하게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는 내 자신을 보고 놀랄 때가 있다.
아직은 미래를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겠지..

차근 차근 생각하자..
모든 것이 엉클어진 상황에서 어떤 것이 내게 최선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내가 할 일은 남아 있겠지..

촉진제 때문인지 왼쪽 엉덩이뼈쪽에 뻐근한 듯한 약간의 통증이 있는 것 같다.
항암제 부작용으로 벗겨졌던 손바닥/발바닥은 피부갈이가 끝났다.
머리털은 대부분이 빠져버리고.. 거의 맨살이다.

지금 TV에서는 2011 세계대구육상경기대회 8일차로 여자 100m 허들 준결승전이 진행중이다.
단거리 선수들이라 근육질 몸매에 말들이 뛰는 것 같다.
저 정도는 아니더라도.. 노환으로 세상을 마감하기까지는 큰 병없이 사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젊어서 열심히 살고.. 노년에는 아내와 공기좋은 곳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하며 살 생각이었는데..
휴식을 취해야 하는 시간이 너무 빨리 찾아왔다.

잠자리에 들기전에 딸과 통화를 했다.
수능을 앞두고 있지만 아직도 철부지 어린애다.
끝까지 부모가 돌봐야 할지도 모르는데.. 모든 것이 안타깝다.

수혈이 없으니 오늘의 일정은 수월하게 끝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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