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장난

백혈병 진단을 받다. - 2011.07.31-08.06 본문

투병생활/2011

백혈병 진단을 받다. - 2011.07.31-08.06

삼포친구 2011. 8. 14.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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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일..

입원을 하고 과다출혈로 인한 수혈을 하고.. 혈액검사를 하고..
헤모글로빈과 혈소판 수치가 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차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결국은 급성골수성백혈병이라는 소견을 받는다.
하늘이 무너진다.
재작년에 친한 친구하나를 급성백혈병으로 잃었다.
한순간에 내인생의 모든 것이 정지되는 느낌이다.
지난 일들이 순식간에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나 막막해 진다.

아내와 잠깐 병원밖으로 나와서 담배를 한대 피우며 충격을 이기지 못해 눈물을 흘린다.

내가 인생을 그렇게 막 살아온 것도 아닌데..
왜 나한테 이런 일이 벌어지는 지 모르겠다.
그동안 내 의지에 따라 살아온 일들을 모두 다 접어야 하는 것인가?

주치의에게 따지기도 한다.
혈액검사만으로 진단한 것이니 아직은 불확실한 것이 아니냐고..
매정하게도 의사는 90% 이상의 확률이라고 한다.

나도 그렇지만..
내 뒤치닥거리를 해야하는 아내와 사랑하는 딸이 안타깝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어떻게 해야하나.
예전에 아내와 미리 약속을 했었다.
둘중에 하나라도 암에 걸리면 모든 일을 접고 산속으로 들어가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기로..

분당C병원에서는 재촉을 한다.
골수검사를 해야 정확한 진단이 나온다며.. 골수검사를 할 것인지를 결정해 달란다.

아내는 곧바로 국내 급성골수성백혈병의 전문병원으로 옮기자고 한다.
거기 들어가면 언제 다시 나올수 있다는 보장도 없는데..
너무도 집에 가고 싶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이 이런 느낌일까??
병원을 가더라도 집에 가서 하루를 맘 편하게 있고 싶다고 우겨서 집으로 퇴원을 한다.
팔에 꽂혀있던 주사바늘을 모두 빼내고 나니.. 차라리 홀가분하다.

아내와 딸과 맛있는 저녁식사를 한다.
저녁식사 한끼가 이렇게 맛있는 줄은 예전에 몰랐다.
또 눈물이 흐른다.
누리고 있을 때는 몰랐던 작은 행복이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지..

아내와 산책을 하며 전문병원(서울S병원)을 찾아 정밀검사를 받을 준비를 한다.
혈액검사의 오진을 기대하며..
마음속으로 삶에 대한 다짐도 하고..

8월 2일..

분당C병원에서의 청천벽력같은 진단결과를 뒤로 하고..
보다 정확한 진단을 받기위해 서울S병원을 찾는다.

병실이 부족하여 아쉽지만 응급실에 입원을 한다.

정확한 진단은 안하지만..
분당C병원에서의 진료기록과.. 혈액검사 만을 갖고 유사한 진단을 한다.

그리고.. 곧바로 항암치료가 시작된다.
베사노이드를 복용하며 항암치료를 시작한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믿을 수 없다.
그렇게 못되게 살아온 인생도 아닌데..

8월 3일..

병명은 급성골수성백혈병이나 정확한 병명을 알기 위해서는 혈액검사 만으로 불충분하다.

골수검사를 받았다.
엉덩이 뼈가 뻐근하게 통증이 다가온다.

아직도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혼란스럽다.



8월 4일..

내가 정말 항암치료를 해야 하는가?

예전에 아내하고 약속한 것이 있다.
우리 둘중에 한사람에게 암발생과 같은 이런상황이 벌어지면 어떻게 하자고..
그것은 일차적인 항암치료를 하고 그동안의 모든 것을 접고 산좋고 물좋은 곳으로 이주하여 사는 것이다.
아내도 그 말에 동의했었다.

레지던트 쯤 되어보이는 의사가 오시더니..
급성골수성백혈병 중에서도 M3 유형일 가능성이 가장 큰데..
이 병은 앞으로 하루이틀이 매우 중요하단다.

항암치료 중에 장기에 출혈이 생길 수 있으며 출혈은 생명에 매우 치명적이라는 것이다.
그 확률이 50%.. 아내와 함께 충격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예전에 우리 둘중에 누구라도 암에 걸리면 치료를 거부하고..
시골에 내려가서 좋은 공기 마시며 여생을 보내자고 했었던..

아내와의 약속을 지킬까하는 생각이 든다.
또 다시 눈물이 흐르고.. 남편없이 아빠없이 남겨진 아내와 딸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인연이란..
내가 속세를 떠나는 것이야 쉽겠지만..
나와 인연을 쌓은 사람들과의 인연을 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이 슬프다.

8월 5일..

응급실에서 일반병동으로 옮긴다.

환자입장에서야 응급실이나 일반병동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지만..
보호자에게는 훨씬 좋아졌다.
응급실에서는 의자에 쪼그려 앉은 채 잠을 잤지만 병실에서는 간이 침대가 있어 그나마 편하게 쉴 수가 있다.

병실에는 대부분 혈액암으로 입원한 사람들인데..
서서히 백혈병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이 슬프다.

백혈병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하는 동안.. 좋아진 것이 있다.
아내와 24시간을 얼굴 쳐다보며 보낼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얼마나 좋은 행복인지 예전엔 잘 몰랐다.

그리고 그것도 부족해서 아내는 남편에게 모든 것을 올인하겠다고 한다.
자신이 하던 사회활동도 남편을 위해서 모두 접겠단다.

남편도 사회활동을 접고.. 아내도 사회활동을 접으면.. 어떻게 되는 건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