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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생활/2012

지난 14개월 - 2012.09.30-10.06

삼포친구 2012. 10. 5.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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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5일..


다음 주면 직장으로 복귀를 한다.

지난 14개월 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2011.07.28-2011.10.03 (발병과 입원 그리고, 1차항암)


2011.07.28.. 

위장출혈로 분당C병원에 입원을 하고..


2011.08.01..

급성골수성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눈앞이 깜깜했던 절망적인 상황.. 멍하다.

담배를 피워가며 정신을 차려보지만 흐르는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본격적인 치료를 위해 서울S병원으로 이원하기로 하였다. 


곧바로 분당C병원에서 서울S병원으로 가자는 가족들의 의견을 뿌리치고..  

하루라도 집에서 보내고 싶다며 집으로 퇴원을 하였다. 

그 당시만해도 병에 대한 두려움으로 다시 집에 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을 갖기 어려웠다.

삶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가족끼리 둘러앉아 저녁식사를 하는데 마지막 식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밖으로 나가 다시 담배를 피워가며 슬픔을 삼키고 치료에 대비하여 마음을 다졌다.


2011.08.02..

서울S병원에 입원하여 본격적인 1차항암(관해) 치료가 시작되었다.

혈액검사와 골수검사를 하고.. 케모포트(중심정맥관) 삽입 수술을 하고.. 

워낙 유명한 병원이다 보니 입원실을 구하지 못해 응급실에서 며칠을 보냈다.

의사는 급성골수성백혈병 중에서도 일단 M3로 진단을 하였고..

향후 며칠간 머리나 장기에서 출혈이 발생하는 경우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또 한번의 절망..  


2011.08.07.. 

응급실에서 일반병실로 이동.. 하루를 보낸 뒤.. 무균실로 이동하고.. 

하루 한시간 아내와의 면회시간을 유일한 낙으로 삼으며 하루 하루를 보냈다.


2011.08.11..

항암탈모에 대비하여 삭발을 하는데.. 눈앞의 강한 적 때문에 눈물도 나지 않았다.

입원후 담배는 피울 수 없는 상황이 되었지만.. 이 역시 눈앞의 강한 적 때문에 금단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2011.08.12..

골수검사 결과 급성골수성백혈병(M3) 확진판정을 받는다.


이후.. 내게 투여되는 수많은 항생제와 항균제.. 항암제.. 

어차피 긴긴 시간 할일도 없고.. 

혹시 나중에 의료사고라도 발생하면 어쩌나 근거자료라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투여되는 약들을 열심히 기록하였다.

그리고.. 

하루빨리 바깥세상에 나가서 마음껏 땅을 밟아 보겠다는 희망만으로 하루 하루를 보냈다.

거의 한 달간의 1차항암 치료 끝에 백혈병세포가 정상세포의 5%이하라는 관해에 성공하였다.


2011.09.05..

항암치료로 떨어졌던 혈액수치가 정상수치에 가깝게 회복되고.. 1차항암을 성공적으로 마친다.


2011.09.06..

드디어 퇴원..

교도소에서 출감하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절망은 어느새 서서히 희망으로 바뀌었다.


퇴원후 곧 바로 바닥으로 떨어진 체력을 끌어 올리겠다며 산행과 운동을 시작하였다.

이때 시작된 산행과 운동은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2차항암까지 약 4주간의 휴식기가 주어졌지만.. 매주 한번씩 외래로 병원을 오가며 혈액검사와 약물치료는 계속 이어졌다.


2011.10.04-2011.11.21 (2차항암과 재입원)


2011.10.04..

2차항암(공고)이 시작되었다.

4일간 병원을 오가며 항암주사제를 맞는다. 


이후 매주 외래 검진을 계속되고.. 2주정도가 지나면서 혈액수치가 떨어진다. 


2011.10.20..

2차항암 치료 중에 열이 40도 가까이 올라 응급실에 입원하였다.

항암치료로 혈액수치와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몸속 세균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세균과 싸울 용병조차 전혀없는 상태의 환자를 전장에 무방비상태로 내놓는 의사들의 용기에 기가 찰 노릇이었다.

환자는 생사의 길을 넘나들고 있는데..

무사히 넘어가면 다행이고..

열이 나면 응급실에 와서 치료하면 된다는..

그들의 용감성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 

응급실은 곳곳에서 환자들의 신음소리와 보호자들의 다급한 고함소리가 뒤섞여 지옥이 따로없다.


병원에서는 열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며 해열제는 사용하지 않고.. 항생제만을 사용하여 열의 원인을 찾는다.


2011.10.27..

응급실에서 8일이 지나서야 열이 잡히고.. 무사히 퇴원하였다.


2011.11.22-2012.01.02 (3차항암)


11월 22일부터 3차항암(공고)이 시작되었다.

2주정도 지나서 또 다시 고열이 찾아올까 긴장하며 바깥출입을 자제하고 위생관리를 철저히 하였다.

다행이 고열은 찾아오지 않았고 무사히 3차항암을 마쳤다.


2012.01.03-2012.02.14 (4차항암)


그리고, 4차항암(공고)도 별다른 어려움없이 무사히 마쳤다.


2012.02.15-현재 (유지치료) (2년 예정)


금년 2월 15일.. 4차항암 치료를 마친 후에는 유지치료에 들어갔다.

병원도 매주 가는 것이 아니고 매3개월 마다 오가고 있다.


그동안 뼈에서 골수를 채취하는 골수검사는 무려 6번.. 이제는 노이로제에 걸릴지경이다.

다행이 백혈병이라는 것이 외과적인 수술을 필요로 하지 않으므로 중심정맥관 삽입이라는 간단한 수술외에는 몸을 상하게 하지 않았다.

속은 어떤지 모르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졌다.


항암치료로 빠졌던 온몸의 털들은 봄철에 새싹처럼 다시 돋아나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항암제의 영향으로 손발바닥은 몇번을 벗겨지고.. 항암이 끝나면 다시 새살이 나오고..

죽었다 살았다를 반복한 손톱에는 항암테까지 생겼으나.. 이 또한 지금은 기적처럼 모두 사라졌다.

내 살과 세포들의 재생력에 경이감을 느낀다.

외출할 때 항상 하고 다녔던 마스크도 어느새 벗어 던졌다.

 

그동안 체력을 보강한다며 산행과 운동을 열심히 했다.

동네산에 한두시간 오르내리다가 이제는 대여섯시간의 원정산행도 즐길 정도가 되었다.

산에서 한걸음 한걸음 오를때 마다 내 몸속의 암세포가 하나씩 사라져간다는 즐거운 상상을 하며..

지난해 퇴원 후부터 현재까지의 산행횟수를 보니 무려 28회.. 

헬스장에서의 달리기도 처음에는 걷는 수준이었으나 지금은 30분에 4km 를 달릴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산행과 운동으로 흘리는 땀방울에도 암세포가 하나씩 섞여서 배출된다는 즐거운 상상을 한다.

이 정도의 체력이면 외형적으로는 직장에 복귀해도 큰 문제는 없을 듯하다.

다만 손가락뼈와 골반뼈의 통증이나 운동후에 조금 쉽게 피곤해지는 것이 예전과 다른 점이다.


병을 얻기 전과 후의 마음가짐도 많이 달라졌다.

이제 직장에서의 승진이나 인생에서의 욕심은 많이 사라졌다.

[어떻게 가족과 함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최대 화두로 떠 올랐다.

직장생활도 이러한 화두를 풀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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